대학특성화 갈수록 꼬여…기초학문이 감원 희생양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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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10 07:10  |  수정 2014-04-10 07:12  |  발행일 2014-04-10 제1면
지역대학, 인문·자연·예체능 위주 통폐합 나서

구조조정과 연계한 대학 특성화 사업으로 기초학문이 무너지고 있다.

교육부가 대학 평가의 지표로 학생 충원율과 취업률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인문과 자연, 예체능 등의 기초학문이 학과 폐지와 통폐합의 ‘희생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권 대학들은 이달 말 대학교육 특성화 사업 신청 마감을 앞두고 학제 개편, 학과 통폐합 등을 통한 막바지 구조조정에 한창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지방대학 특성화사업(CK-Ⅰ) 시행계획에 따르면 정원을 더 많이 감축할수록 가산점이 높아져 사업 선정에 유리해지는 데다 특성화 전략을 위해서는 특정계열에 재원과 인력을 몰아줘야 하는 만큼 학사구조조정을 통한 정원감축이 불가피하다.

각 대학들이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기준으로 내세운 것은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 신입생 등록률이다. 이에 따라 취업률과 충원율이 낮은 인문·자연과 예체능 분야의 학과들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면서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영남대의 경우 경쟁률, 유지율, 취업률 등의 외부적 요인과 연구 업적 등의 자체 역량 평가 등을 감안해 최근 3년간의 학과실적 평가를 했다.

이에 따라 16개 학과가 8개로 통폐합됐다. 국사학과와 사학과가 역사학과로, 한국회화 전공과 회화 전공이 회화전공으로, 피아노 전공과 관현악 전공이 기악과로, 국악 전공과 작곡 전공이 음악과로 각각 통폐합된다.

이 밖에도 화학과와 분자생명과학전공, 화학공학부와 나노메디컬유기재료공학과, 조경학과와 산림자원학과, 시각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와 모바일영상디자인학과 등이 하나의 학부 또는 학과로 합쳐진다.

김삼수 영남대 교무처장은 “학령 인구의 감소로 대학들이 정원을 줄이는 것이 당면 과제인데 기초학문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학과 평가 지표가 좋지 않은 인문대, 자연대 등의 기초학문 관련 과를 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강제적으로라도 여타 국립대학이 기초학문을 보호해야 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계명대의 경우 99개의 학과를 대상으로 한 평가 결과 10개과를 모집 중지 대상 학과로 선정, 발표했다. 이들 10개 학과 가운데는 동양화과, 오르간과, 중문과(야), 생명과학계열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생물학과와 생물학과는 통폐합되었으며, 철학과와 윤리학과는 올해초 통폐합됐다. 화공과와 화학시스템공학과도 통폐합되며 환경계획학과, 경찰법학과, 전통건축학과, 실내환경디자인학과도 내년도부터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다. 계명대는 이를 통해 내년도 150명원의 입학 정원을 감축한다. 2017년까지는 350명이 줄어든다.

이필환 교무처장은 “정부의 경쟁력 평가 잣대를 준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학과의 책임만 묻기에는 곤혹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면서 “장기적으로 기초학문과 예체능 학문의 구조조정에 따른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구대는 내년도 신입생 모집부터 자율전공학부와 산업복지학과를 뽑지 않는다. 줄어드는 정원은 182명에 이른다. 대구대는 또 신입생 및 재학생 충원율, 입학성적, 자구노력 등을 기준으로 93개 학과의 하위 30%도 발표했다. 장기적인 위험군으로 지목된 35개 학과 가운데 인문대가 12개 학과 중 7개, 자연과학대가 6개 학과 중 5개, 조형예술대학이 7개 중 4개를 차지했다. 전체 대상 학과의 절반에 이르는 수치다.

박순진 대구대 기획처장은 “정부의 대학 평가가 정량적으로만 이뤄지고 있어 지방대로서는 그 기준을 맞추기 쉽지 않고 이런 과정에서 취업률과 충원율이 낮은 인문학과 예체능관련 학과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대학 평가는 양보다는 질적인 평가로 이뤄져야 하며 대학별 교육여건을 감안해 평가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가대도 오는 9월1일자로 영어영문학과와 실무영어과가 영어학부로 통합되는 것을 비롯해 14개 학과를 7개 학과로 통폐합한다. 이 대학은 2005년 구조조정을 통해 독어독문학과, 불어불문학과, 철학과, 이태리어학과 등의 학과를 없앤 바 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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